미국이 발표한 반도체법(Chips Act)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강력한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수조 원 규모의 보조금 제공과 더불어 기술 이전, 생산 정보 공개, 중국 투자 제한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국내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와 반도체 업계는 어떤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1. 한국의 대응 정책 변화
한국 정부는 미국 반도체법에 따른 자국 기업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외교 및 정책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미국 측과의 긴밀한 협의를 추진하고 있으며, 대통령실 역시 외교적 채널을 활용한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정보 제공 범위를 제한하거나, 특정 기술에 대한 이전 요구를 완화할 수 있도록 미국 측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반도체산업지원법과 같은 국내 입법 강화를 통해 자국 기업의 협상력을 높이고,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모색 중입니다. 한편, 한국은 이 문제를 단순한 산업 차원이 아닌 외교 전략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주도권을 갖기 위해선,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외교적 명분과 국제 협력 전략도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즉, 단기적인 산업 지원을 넘어 중장기적으로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2. 기술 전략 확보와 독자노선
반도체 기술 경쟁은 이제 단순한 산업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의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주적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첨단 미세공정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확보하고 있으며, 인공지능과 관련된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도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부 역시 R&D 투자 확대와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을 통해 산업 생태계 전반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반도체, 차량용 반도체 등 차세대 성장 동력에 대한 국가 전략도 마련되었으며, 이를 통해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도 고부가가치 반도체 산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주권 확보입니다. 기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글로벌 기업들과의 공동 개발 및 특허 협력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 산업 구조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3. 수출 관리와 글로벌 협상 전략
미국 반도체법의 또 다른 문제는 한국 기업들의 대(對)중국 수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중국 내 생산 시설을 보유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규제 요건을 충족하면서도 기존 고객 및 시장을 유지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일정 수준의 유예기간과 예외조항을 확보한 바 있으며, 지속적으로 협상 창구를 열어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정부는 다자간 협의체를 활용한 외교적 대응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나 OECD를 통해 기술 통제 기준의 조율과 표준화를 추진함으로써, 특정 국가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 기업들은 제3국을 통한 우회 생산 전략이나 새로운 시장 개척 등 다양한 리스크 분산 전략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응은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공급망 분산과 기술 다변화를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급변하는 글로벌 반도체 지형에서 한국이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반도체법은 단순한 산업 정책을 넘어 국가 전략과 외교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에 대응하여 기술력 강화, 독자 노선 확보, 글로벌 외교 전략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단기 대응을 넘어 중장기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 열쇠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넘어서, 선제적이고 전략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